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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웃음에 물든, 칼끝 너머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침묵

by dall0 2025. 8. 18.

[평양성] 웃음에 물든, 칼끝 너머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침묵
[평양성] 웃음에 물든, 칼끝 너머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침묵

 

 

웃음에 물든 옛날이야기 속으로

 

2011년 개봉한 한국 영화 '평양성'은 사극 장르 안에서도 독특한 개성을 가진 작품입니다. 보통 역사 영화라고 하면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주제를 가볍게 풀어내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황산벌의 후속작답게, 백제 멸망 이후 신라와 고구려가 맞붙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단순한 역사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코미디 요소를 적극적으로 담아내 웃음과 몰입을 동시에 이끌어냅니다. 40대 초반 기혼 여성인 제 입장에서 '평양성'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평소 아이들의 역사 공부를 도와주다 보면, 연도와 사건 이름만 나열된 교과서 속 전쟁 이야기가 참 딱딱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영화 속 병사들과 장수들은 웅장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만날 법한 친근한 이웃 같았습니다. 김유신 장군(정진영 분)은 전장에서 진지하면서도 틈틈이 유머를 던지고, 연개소문(이문식 분) 역시 강인함 속에 장난기와 인간적인 허술함을 보여줍니다. 특히 병사들이 전투 준비를 하면서도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때로는 사소한 일로 투닥대는 장면이 현실의 가족 대화나 직장 동료 간의 분위기와 닮아 있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그 모습 속에서 저는 과거의 전쟁터도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었음을 실감했습니다. 웃음은 긴장감을 풀어주고, 서로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웃음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희생을 불러왔는지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전투 장면이 길게 이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긴박함과 그 안에 숨어 있는 비극은 충분히 전해집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그 시대에 내가 살았다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떠올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총칼 대신 경쟁과 불확실한 미래와 싸우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남편의 직장 문제, 아이들의 교육, 부모님의 건강처럼 일상의 과제들은 크고 작은 전투와 다를 바 없습니다. '평양성'은 이런 점에서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닙니다. 웃음으로 관객의 마음을 연 뒤, 역사의 무게와 오늘날의 고민을 함께 꺼내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대답을 찾게 됩니다. 저는 이 질문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제 마음속을 울렸습니다.

 

칼끝 너머에서 느껴지는 사람 향기

 

전쟁 영화라 하면 피와 죽음, 무거운 대립만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평양성은 그 칼끝 너머에서 사람 냄새를 맡게 해 줍니다. 신라와 고구려가 맞붙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병사들은 서로를 챙기고, 때로는 웃음으로 두려움을 달랩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우와 빵 한 조각을 나누고, 전투 전 잠시 숨을 고르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오히려 더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들을 보며 40대 주부로서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남편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혹은 가족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집 안의 분위기는 쉽게 무거워집니다. 그럴수록 가족끼리 나누는 작은 농담과 미소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전쟁터의 병사들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비중이 크지 않지만, 존재감은 강렬합니다. 전쟁터로 향하는 남편을 웃으며 보내는 아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꾹 눌러 담고 무사 귀환을 기도하는 모습은 몇 초간의 장면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들의 표정은 말없이도 모든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리고 '평양성'은 적군과 아군의 경계를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고구려 병사도, 신라 병사도 각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국가의 명령을 따라 싸우고, 어떤 이는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전쟁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것이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전쟁을 치릅니다. 직장에서의 경쟁, 자녀 교육 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 누구나 각자의 전선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이 웃음과 연대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습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지혜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평양성'은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면서도 그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인간적인 온기를 담아냅니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그 따뜻한 온기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이 남긴 묵직한 침묵

 

영화가 끝날 무렵, 극장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처음엔 유쾌한 웃음이 오갔지만, 결말이 가까워질수록 관객들의 표정은 점점 진지해졌습니다. '평양성'의 마지막은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지만, 그 과정에서 사라진 수많은 생명과 깨진 가정이 남깁니다. 웃음 속에 숨어 있던 전쟁의 무게가 서서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던 길,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영화 속 장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전쟁과 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일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평양성'의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억지로 눈물 짜내는 방식으로 그리지 않고, 웃음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점입니다. 관객은 경계심 없이 이야기에 몰입하다가도, 어느 순간 깊은 울림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저는 "만약 저 속에 내 가족이 있었다면?"이라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그 질문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지금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그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과 선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0대 초반 기혼 여성으로서 저는 이 영화를 통해 가족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나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영화 속 전쟁은 과거의 일이지만, 우리 각자의 삶 속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남편의 하루를 지켜주고, 아이들의 미래를 보호하며, 부모님의 안녕을 살피는 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싸움입니다. '평양성'은 웃음으로 시작해 깊은 성찰로 끝나는 여정을 제공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단순히 재미있었다는 감상에 그치지 않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머물러, 일상의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