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스며드는 신뢰, 두 사람의 오래된 이야기
2019년 개봉한 한국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우정과 이별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역사 드라마입니다. 단순한 사극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감정선에 집중한 이 작품은 오랜 시간 곁을 지킨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따뜻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펼쳐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부부 사이, 친구 사이,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이다 어느 날 문득 눈앞에 드러나는 순간이 있잖아요. 세종(한석규 분)과 장영실(최민식 분)은 그런 관계였습니다. 군신 관계였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인간적인 신뢰와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세종이 장영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끊임없이 신뢰하며 성장의 기회를 주는 모습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낌없이 밀어주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라고 느꼈습니다. 저 또한 결혼 생활 속에서 남편과 자녀들을 바라보며,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절실히 느끼고 있기에 더 깊은 감정이 일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처럼 '하늘에 묻는다'는 행위는 단지 과학적인 탐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마음을 묻는다', '기억을 되새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장영실은 하늘을 읽는 기술자였지만, 세종에게는 마음을 함께 나눈 동반자였습니다. 둘이 함께 해시계를 만들고, 자격루를 만들며, 백성들의 시간을 함께 고민하던 그 모습은 어느 부부의 공동 육아처럼 진심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진심에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돌보는 데 있어서 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애썼던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를 믿고 함께해 주는 사람만 있어도 삶은 훨씬 덜 외로워진다는 것을,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통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흘러간 기억 속에서 아버지를 다시 떠올립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장영실이라는 인물이 제게 낯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저희 아버지와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장영실은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인물입니다. 어떤 과정으로 세종의 눈에 띄었고, 어떻게 관직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든 업적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의 손길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간과 질서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역시 조용하고 표현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어릴 적엔 그것이 답답하고 무뚝뚝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모든 침묵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장영실이 자신을 향한 세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기계를 설계하고, 실험을 거듭하는 모습에서, 저는 아버지의 밤을 떠올렸습니다. 묵묵히 일하고, 가족을 위해 건강을 챙기지 못하면서도 웃음 한 번 없이 살아오신 그 시간들이 영화를 통해 떠오른 것입니다. 세종은 그런 장영실에게 말합니다. "나는 너의 마음을 안다." 그 대사가 가슴에 깊이 박혔습니다. 살면서 그 어떤 말보다 힘이 되는 것은 '안다'는 말이 아닐까요. 사랑한다는 말보다도, 괜찮다는 말보다도, 누군가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확신은 견디기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사람을 버티게 만듭니다. 우리 삶에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 있습니다. 장영실이 결국 어느 날 갑자기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는 기록은,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도 말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세종은 그를 잊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공개적으로 그를 찾아 나서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리움을 놓지 않습니다. 그것이 저는 진짜 사랑이라 느꼈습니다. 부모와 자식, 부부와 부부 사이에서도 때로는 말이 없어야 더 진실한 감정이 있습니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보며 저는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아버지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저에게 남긴 따뜻한 마음을 다시금 꺼내 볼 수 있어, 이 영화가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마음을 위로받습니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관계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조용히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적인 영화'라 하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드라마를 떠올리지만, 저는 오히려 이처럼 말보다 정적 속에서 전해지는 감정이 더 진하게 남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갑니다. 나를 위한 시간은커녕,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일상 속에 갇혀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저는 오랜만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곁에 있던 시간들, 말없이 참아내며 함께 견뎌온 날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세종은 끝내 장영실을 다시 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떠난 사람을 탓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존재를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기억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가장 슬프고도 따뜻한 방식의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떠나보냅니다. 어떤 사람은 멀리 떠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이 멀어져 사라집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과의 추억이 나를 지탱해 주고, 그리움이 삶의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장영실의 존재가 세종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에게도 감동이 되어 돌아오는지를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잊힌 인물을 다시 부르는 영화이지만, 동시에 우리 마음속의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그리움, 사랑, 동행이라는 감정의 이름으로, 이 영화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