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다시 마주했습니다
2020년에 개봉한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제목부터 묘한 긴장감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작품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땐 단순한 코미디 호러 장르겠거니 하고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속에 숨어 있는 풍자와 메시지에 저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었고, 영화를 끝내고 나서는 한참 동안 여운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특히 40대 초반 기혼 여성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니, 단순한 웃음 이상의 깊은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가사노동, 육아, 회사 일, 그리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바른 아내', '좋은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잊게 됩니다. 그동안 무뎌졌던 감정들이 영화 속 캐릭터들을 보며 하나둘 떠올랐고, 마치 감춰왔던 진짜 나와 다시 마주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외계 생명체와의 대립이라는 비현실적 설정을 바탕으로 전개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특히 주인공 소희(이정현 분)는 겉보기엔 다정한 남편과 안정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남편의 이중적인 모습을 의심하면서 점차 진실에 다가갑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점점 용기를 얻게 되고, 결국 자신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당당히 맞서게 됩니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 주부들의 내면에 잠재된 강인함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겉으로는 순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협에도 맞설 수 있는 힘. 그것은 단순히 엄마로서, 아내로서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힘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삶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저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점입니다.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 속에서도 불쑥불쑥 현실의 그림자가 겹쳐 보이면서, 감춰왔던 감정들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들이 저에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웃음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겉보기엔 유쾌하고 엉뚱한 블랙코미디 영화입니다. 대사도 발랄하고 전개도 빠르며, 설정은 다소 과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 사회와 인간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통찰이 숨어 있습니다. 특히 결혼 생활에 대한 묘사는 적지 않게 충격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이상적인 남편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모습. 남편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은 단순한 외계인의 이야기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신뢰로 유지되던 부부관계에 금이 가는 순간, 우리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소희는 처음엔 혼란스러워합니다. 남편이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느낌, 일상이 어딘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불안감.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스스로의 감정이 과한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장면들은 많은 여성들이 겪는 현실적 갈등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혼란 속에서도 결국 자신의 직감을 믿고 움직입니다. 여성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는 장면에서는, 여성들 간의 연대가 얼마나 강력하고 진실된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특히 이정현, 김남희, 서영희 배우가 보여주는 케미스트리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선 깊은 감정의 공유를 보여줍니다. 죽지 않는 존재들은 단순한 악당이 아닙니다. 그것은 때때로 우리가 감추는 욕망일 수도 있고, 반복되는 거짓말일 수도 있으며, 혹은 사라지지 않는 상처나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것들이 어떻게 계속해서 우리를 위협하고, 결국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삼켜버리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웃음을 얻었지만, 그 웃음은 단순한 코미디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고, 삶의 진실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한 밤을 살아갑니다
'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을 보고 난 후, 제 삶에서 놓치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시간과 감정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타인을 위한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가족을 챙기고, 아이를 돌보고, 남편의 일정을 맞춰주고, 부모님의 안부를 챙기다 보면 정작 나의 욕구와 감정은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모든 역할 뒤에도 여전히 '나'라는 존재가 있고, 그 존재는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소희는 단순히 남편의 외계인 정체를 밝혀내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녀는 변화의 상징이며, 억눌렸던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찾는 인물입니다. 그녀가 혼자였더라면, 그 밤은 공포와 무력함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유대와 지지 속에서 그녀는 점점 더 강해지고, 결국 모든 위협을 스스로 이겨냅니다. 그 모습은, 제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위해 싸워봤는가?" 그 질문은 단순히 외계인과 싸운다는 상상 속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나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 나를 위한 밤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루에 30분이라도, 아이가 잠든 뒤 혹은 식구들이 모두 바쁜 시간에 조용히 나만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그런 시간. 그 시간은 세상에 보이지 않더라도, 제 삶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회복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그저 재미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저처럼 삶에 치여 자신을 잊어버린 여성들에게 용기와 웃음을 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웃을 수 있고, 다 보고 나서는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여성들의 용기, 연대, 그리고 삶의 진정성을 담은 이 영화는, 40대 기혼 여성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추천드리며, 저처럼 당신도 당신 자신을 위한 그 밤을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