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4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문득 삶을 돌아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이들은 어느덧 제 손을 떠나 각자의 삶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남편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예전처럼 다투거나 서로의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일은 줄었지만, 그만큼 대화의 밀도도 옅어진 느낌입니다. 평온함이라는 이름의 일상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스멀스멀 마음속을 파고들곤 했습니다. 일이라는 것은 한때 제 삶의 중심이자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였습니다. 바쁘게 일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존재감을 느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집안일 사이에 문득 떠오르는 희미한 기억처럼, 과거의 장면으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감각이 점점 흐릿해지면서,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를 자주 되묻게 되었습니다. 그런 시점에서 우연히 영화 '인턴'을 보게 되었고, 생각보다 큰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영화 '인턴'은 은퇴한 70세 남성 벤(로버트 드 니로 분)이 온라인 패션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함과 낯섦이 가득하지만, 그는 점차 회사의 일원으로 녹아들어 갑니다. 전통적인 가치와 신세대의 문화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세대 간의 이해와 존중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젊고 성공한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 분)와 벤 사이의 관계입니다. 겉으로 보면 둘은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합니다. 줄스는 젊고 유능하며, 끊임없이 달리는 사람입니다. 반면 벤은 이미 은퇴한 노년의 남성으로, 느긋하고 조용한 사람이죠. 하지만 영화는 그 겉모습 뒤에 숨겨진 공통된 외로움과 삶의 무게를 조명합니다. 벤은 줄스를 단순히 도와주는 조력자가 아니라, 그녀가 마주한 삶의 고비에서 조용히 곁을 지키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넵니다. 벤의 태도는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가진 연륜과 태도를 통해 공간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젊은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그들과 경쟁하기보다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그의 모습은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제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점점 '쓸모없어지는 것'이라 여겨왔습니다.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 더는 중심에 있지 못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벤을 보며 그런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속도를 조급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여유롭고 품격 있는 태도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지혜와 여유, 안정감을 통해 그는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영화 '인턴'은 중년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저에게 다시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단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입니다. 그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낸 내면은 때로는 말없이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조용히 일깨워주었습니다. 지금 내 삶이 비록 예전처럼 화려하거나 눈부시진 않더라도, 그 안에는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 올린 어떤 깊이와 무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의 나에게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무엇이 될 수 있음을, 저는 이제야 조금씩 믿게 되었습니다.
커리어와 가정,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영화 '인턴'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단연 줄스입니다. 성공한 스타트업의 CEO로, 아름다운 외모에 귀여운 딸, 자상한 남편까지 곁에 있는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누구나 부러워할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깊은 고민과 갈등이 드러납니다. 바로 커리어와 가정 사이에서의 균형입니다. 외부에서는 '슈퍼우먼'이라 불릴지 몰라도, 그녀는 늘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의심하고, 오해를 받기도 하며, 때로는 지쳐 무너지기도 하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줄스가 겪는 갈등은 단지 영화 속 설정만이 아닙니다. 저 역시 40대 여성으로서, 가정을 돌보며 동시에 사회적인 성취에 대한 욕망을 버릴 수 없었던 시간들을 지나왔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함께 가정을 꾸려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만의 영역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기대, 사회의 시선, 체력의 한계,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의 갈등이 커리어를 향한 제 열망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종종 '이 정도면 됐지'라는 체념과 '좀 더 해볼 수 있었는데'라는 후회 사이에서 마음이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줄스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 외부 CEO를 영입하자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그녀가 그 제안을 받고 고민하는 과정은 마치 저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회사를 세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줄스의 모습에서, 저는 일과 가정, 그리고 나 자신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애써왔던 제 지난 시간을 떠올렸습니다. 영화 '인턴' 속에서 줄스는 단순히 회사라는 조직의 리더일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는 엄마이자 아내, 한 사람의 딸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고민하고 선택하는 모든 과정은 단순한 사업적 판단을 넘어 그녀 자신의 자존감, 정체성,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정에서 벤이라는 인물은 따뜻하고 묵직한 조언으로 그녀의 내면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그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칭찬이나 성과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절실한 건, 지금 이 자리에서 묵묵히 애쓰고 있는 나 자신을 향한 진심 어린 한 마디입니다. 줄스가 그 말을 들으며 위로받았듯, 저도 영화를 보며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 졌습니다. "정말 잘하고 있어.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커리어와 가정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나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하는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두 영역 모두에서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엄마이자 딸, 동료이자 리더, 그리고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복잡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그 모든 역할 속에서 흔들리고 방황하면서도 계속 나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영화 '인턴'은 조용히 말을 걸어줍니다.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삶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운 시간
영화 '인턴'을 보고 나면, 자연스레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우리는 멈추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잠시 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뒤처질까 봐, 잊힐까 봐,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될까 봐 불안해하며 앞만 보고 달려갑니다. 매일 일정에 쫓기고, 누군가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나 자신을 다그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영화 '인턴' 속 주인공 '벤'은 그런 흐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습니다. 그는 마치 거센 바람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천천히 걷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남들보다 더 빠르지도, 더 요란하지도 않지만, 그에게는 어떤 단단한 고요함이 있습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를 즐기고,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며, 진심으로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그런 그의 삶의 방식은 단순히 느림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깊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란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40대를 넘어선 지금, 저 또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청춘의 속도보다 방향을 잃지 않는 '꾸준함'이라는 걸 벤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단정하게 옷을 갖춰 입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런 루틴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고,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신뢰를 주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벤의 모습은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제는 나도 조금은 속도를 조절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일상의 작은 순간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도 따뜻한 미소를 건넬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영화 '인턴'은 단순한 직장 생활을 그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빛날 수 있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관계는 나이를 초월할 수 있으며, 진심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메시지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전해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영화 '인턴'은 지금 이 시기의 저에게 깊은 위로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일과 육아, 가족과 나 사이에서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에게도 분명히 같은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는 것, 그것이 결코 뒤처지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나를 더 잘 지키는 방법임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