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을 살아보진 않았지만, 가슴이 뜨거워지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암살', 바쁜 일상 속 오랜만에 혼자 극장을 찾았던 그날, 그저 액션 영화 하나 보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를 기대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크린 속 인물들이 살아 숨 쉬며 전해주는 감동은 단순한 '재미'나 '감동'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글로만 접해온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대부분 '의미'와 '숭고함'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있었기에, 정작 그들의 고뇌나 일상은 실감 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암살'은 달랐습니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라는 절망적인 배경 속에서,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의 모습은 놀랍도록 생생했고, 너무도 인간적이었습니다. 특히 여성 독립운동가 안옥윤을 연기한 전지현 배우의 눈빛과 행동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어떤 허구적 영웅보다 더 진짜 같았고, 그래서 더 진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안옥윤의 단단한 눈빛, 망설임 없는 판단, 그리고 생명을 건 결단은 단지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켜야 할 어떤 신념을 위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신념은 비단 독립이라는 거대한 목표만이 아닌, 누군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책임감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40대를 살아가는 지금, 저는 그들의 용기를 단지 먼 과거의 이야기로만 느낄 수 없었습니다. 직장에서의 책임, 가정 안에서의 역할,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전하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싸움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당연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작은 선택 하나가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깁니다. 우리는 전쟁도, 독립운동도 하지 않았지만, 삶의 어떤 순간에는 나 자신을 희생하거나 단단하게 버텨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영화 속 인물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보다 지켜야 할 가치를 더 크게 보았기에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단지 총칼로 싸우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성찰하고, 그 속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 또한 그 뜻을 이어가는 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조국은, 지금 우리의 일상 속 삶의 태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염원했던 자유와 평화는, 우리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며 지켜야 할 또 하나의 사명이 아닐까요. 영화 '암살'을 본 이후로, 저는 아이들에게 종종 이야기합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누군가의 용기와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그리고 너희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위해 용기 내야 할 순간이 올 거라고. 그 시절을 살아보진 않았지만, 그 뜨거움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분명히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오늘도 제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놓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은 총만 드는 일이 아니다
영화 '암살'은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첩보 스릴러로 보입니다. 총성과 추격전,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이 영화의 외형을 채우고 있지만, 그 안에는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누구를 위해, 어떤 가치에 목숨을 걸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물음은 단순히 역사 속 인물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저는 이 질문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시대는 변했고, 싸움의 방식도 달라졌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싸워야 할 부조리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총을 들고 전장을 누빌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작고도 치열한 전장을 마주합니다. 가정, 직장, 사회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그 하나하나가 어떤 면에서는 또 다른 '독립운동'일 수 있습니다. 부당한 권위에 맞서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며, 나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 이러한 태도는 모두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용기이며, 역사의 흐름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힘이 됩니다. 저는 직장에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오랜 시간 싸워왔습니다. 여성이란 이유로 평가절하되기도 했고, 때로는 감정적이라는 편견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습니다. 무시당하는 경험도 있었고, 조직 내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저의 능력과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선택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후배 여성들에게도 조금은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영화 '암살' 속 안옥윤이 총을 들고 앞장서던 장면이 자주 떠오릅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생과 사를 가르는 절박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들이 모여 결국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녀처럼 드라마틱한 순간을 살고 있지는 않지만, 매일의 작은 용기들이 모여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어린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를 괴롭히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그것을 외면하고 지나치는 것과 교사에게 정중히 알리고 아이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전자는 침묵이고 외면이지만, 후자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올바름을 선택하는 ‘작은 저항’입니다. 저는 이 작은 저항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제거하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부조리와 침묵을 깨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외면하지 않으며,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려는 모든 실천 말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가 지키는 신념, 행동으로 옮기는 양심,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모범적인 태도. 이 모든 것이 모여 우리 사회를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갑니다. 독립운동은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부당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속이지 않기 위해 말입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과 행동 속에, 독립운동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기억하는 사람만이 미래를 바꾼다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가슴 한편이 묵직하게 눌리는 듯한 느낌이 오래도록 가셨지요. 영화관의 불이 모두 켜졌고 사람들은 하나둘 일어났지만, 저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과연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단지 광복절이나 현충일에 태극기를 다는 것으로 충분한 걸까?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종종 '잊지 말자'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단순한 슬로건을 넘어서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역사는 교과서나 시험문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결국 잊히고, 되풀이되며, 그 희생은 헛된 것이 되고 말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단순히 몇몇 유명 인물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두려움, 분노, 결심과 용기를 떠올리는 것, 그리고 그 정신을 오늘의 삶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진정한 기억이 아닐까요? 나이가 들면서, 특히 40대에 접어들며 삶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습니다. 젊은 시절엔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성공, 성취, 인정. 내가 잘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앞섰지요. 뉴스를 보며 사회적 이슈를 접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젠가 아이들이 나에게 물을 겁니다. "그때 아빠(엄마)는 무엇을 했어?"라고. 그 질문 앞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 '암살'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 속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야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담겨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지키고자 했던 조국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할까요? 영화 '암살'을 본 후, 저는 아이들과 함께 독립운동 관련 전시회를 찾았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일어섰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 앞에서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엄마도 너희도 지금 이 나라에서 이렇게 살 수 없었을지도 몰라." 아이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잊지 말자. 그리고 행동하자.' 단지 감동만으로 끝나선 안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라도 이어가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분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일 것입니다. 역사는 결코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는 역사의 연장선 위에서 살아갑니다. 매일의 선택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이 다시 역사가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화 '암살'은 단지 옛날이야기를 극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조용히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저 역시 매일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