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알게 된 말의 무게 그리고 용기
40대가 되니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말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같은 영화를 다시 보아도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다가오곤 하죠.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역시 그렇습니다. 처음 개봉했을 때 이 영화를 보았을 땐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안타까운 역사, 그리고 피해자들의 용기를 조명한 영화라 생각했었죠. 그런데 몇 년이 흐른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마주한 저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단지 과거의 아픔을 고발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침묵을 깨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영화 속 나옥분 할머니는 처음에는 다소 불편한 인물로 다가옵니다. 구청에 민원을 수시로 넣고, 사소한 규정 위반에도 날카롭게 지적을 합니다. 마치 세상과 싸우듯 살아가는 모습에서 '왜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죠.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며 우리는 그녀의 행동 뒤에 숨겨진 진짜 이유를 알게 됩니다. 옥분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말할 수 없었던 오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말하는 것에 집착했던 이유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절실한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침묵의 시간은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구보다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시간 속에서 그녀는 말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 것이죠. 영어를 배우려는 것도 단지 새로운 언어를 익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직접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녀는, 결국 수십 년을 지나 용기를 냈습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이처럼 무거운 주제를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머와 따뜻함 속에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은 웃으면서도, 눈물을 훔치며,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당신은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저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세상은 모릅니다. 그러나 말하는 것이 항상 쉽지만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특히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누군가의 딸로 살아오며 저도 많은 순간 말을 삼켜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불편해할까, 상처받을까, 아니면 그냥 무시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말에는 상처를 드러내는 아픔도 있지만, 동시에 나를 지키는 힘도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힘은 바로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요. 말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투쟁이자 희망임을, 나이 들어서야 비로소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외면해 온 진실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단순히 일본군 '위안부'라는 과거사 문제를 다룬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일상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수많은 침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말하지 못한 채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예를 들어,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생계나 조직 내 위치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여성들, 가정폭력을 겪으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침묵하는 부모들, 육아와 가사노동에 지쳐가면서도 '이 정도는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버티는 엄마들. 그들 모두가 나옥분 할머니와 같은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결국 말하기를 포기하고 마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세 아이를 키우며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몸이 지치고 마음이 무너질 듯해도 '엄마니까 참아야지.'라는 생각에 쉽게 털어놓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주변에서 '애 셋 키우는 엄마는 원래 바쁜 거야'라는 말에 위로받기보단 더 외로워질 때도 있었고요. 말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어느새 저도 조용히 참고만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옥분 할머니의 용기 있는 행동은 제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외국어라는 장벽을 넘어, 그녀는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한 수많은 청중들이 있었습니다. 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말하는 순간, 나의 진심이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그 마음이 또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본 후 남편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요즘 많이 지쳐있어. 네가 조금만 도와줬으면 좋겠어.'라는 솔직한 말 한마디에, 남편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점차 제 마음을 이해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말했습니다. '엄마도 힘들 때가 있어. 그러니까 우리 서로 도와주자.' 그 말을 한 이후로, 아이들도 저를 더 자주 안아주고, '엄마 오늘 힘들었어?'라고 먼저 물어봐 주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비록 작은 변화일지라도, 말하지 않으면 결코 시작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배웠습니다. 이제는 저도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그리고 제 곁의 누군가가 말을 꺼낼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따뜻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증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라는 제목은 단순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울림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말해야만 한다'는 이 외침은 단지 한 사람의 용기를 넘어, 사회 전체가 귀 기울여야 할 절실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는 그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단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진실을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SNS와 미디어는 넘치는 정보와 말들로 가득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은 종종 묻히고 외면받기 쉽습니다. 자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또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라며 무심히 흘려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외침이 조용히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더 귀 기울이고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말의 홍수 속에서 진짜 목소리를 찾는 일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책임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증언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법과 제도를 만든다 해도, 실제 피해자의 목소리가 없다면 그 변화는 표면에만 머물 뿐입니다. 한 사람의 말, 그 진심 어린 증언은 다른 이들의 인식을 흔들고, 때로는 역사의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말하는 것이 곧 치유이고, 용기이며, 행동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합니다. 저는 40대의 여성이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라는 것의 무게를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아픔이 담긴 진실된 말에는 우리가 더 큰 존중과 책임감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사람, 때로는 말하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단순한 감동 실화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말할 용기와 들을 책임을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단지 영화관에서 눈물 흘리고 끝낼 것이 아니라, 그 감동과 깨달음을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오는 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반드시 한 번쯤은, 아니 그 이상 반복해서 봐야 할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메시지를 곱씹으며, 듣는 사람이자 증언자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