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청춘 위에 남겨진 이름 없는 눈물
2003년 개봉한 영화 '실미도'를 다시 마주한 지금, 저는 40대 초반의 평범한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만 해도 저는 아직 사회와 인생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저 격정적인 액션과 충격적인 실화를 다룬 영화라는 인상만 남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본 '실미도'는 저에게 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속의 청년들은 그저 군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실미도 684부대 요원들의 삶은 단지 국가의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한 개인의 존재가 지워질 수 있다는 무서운 진실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버려진 존재들이었지만, 국가라는 이름 아래 모여 한 줄기 희망을 품었습니다. 임무를 완수하면 새로운 삶이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틴 이들은 결국, 그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버려졌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한 아이의 엄마로서 너무도 가슴 아프고 먹먹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영화 속 청년들을 보는 순간, 문득 제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눈빛과 의지 하나로 세상과 맞서려 하는 그들의 모습은, 지금 막 자라나는 제 아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미래를 꿈꾸는 엄마로서, 한때 누군가의 자식이었을 그들의 삶이 그렇게 허망하게 끝났다는 사실이 너무도 참담하게 느껴졌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약한 이들에게 가혹하고, 때론 그 존재조차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용기는 결코 희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실미도'는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시금 되새겨야 할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의 청춘 위에 흐른 눈물은 단지 과거의 것이 아닌,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서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입니다.
말하지 못한 상처, 조용히 울었던 밤의 기억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며칠 동안은 왠지 모를 공허함이 가슴 한편에 머물렀습니다. 남편과 함께 영화를 봤지만, 끝나고 나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나올까 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슬픔은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의 무력함에 대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말없이 혼자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오랜만에 느껴본 깊은 울음이었습니다. 실미도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임무는 취소되었고, 이제는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된 그들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보호받는 삶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사람들. 하지만 끝내 그들에겐 이름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가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뉴스 속에 나오는 청년 자살, 극단적 선택, 구조적 소외. 그것들은 단지 통계 수치로만 남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히 무너진 희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실미도는 그런 현실을 비추는 거울 같았습니다. 특히 저처럼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보면, 그 슬픔은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과연 이런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감정을 저는 남편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가정에서는 늘 의젓하고, 강한 아내이자 엄마의 모습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미도는 제게 그런 겉모습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했습니다. 조용히 울 수 있게 해 줬고, 그 눈물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슬픔과 공감을 되찾게 해 주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조용히 어루만져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는 엄마의 다짐, 진실을 전하는 삶
실미도를 보고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기억해야 한다는 절박한 다짐이었습니다. 국가가 외면하고, 사회가 잊은 그들을 누군가는 기억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엄마가 된 제 삶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는 종종 승자만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 사이에 존재합니다. 실미도 684부대는 역사책에조차 제대로 언급되지 못했지만, 영화는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다시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그들이 살아있었음을, 고통 속에서도 사람다운 삶을 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때때로 제 아이들에게 진실에 대해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합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정보만으로는 결코 삶을 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미도 같은 영화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계기입니다. 물론 아직은 너무 어린 나이지만, 언젠가 아이가 성장했을 때, 저는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 어떤 진실이 있었는지를, 그리고 그 진실이 어떻게 잊혔는지를 말입니다. 실미도는 슬픈 영화지만, 동시에 아주 중요한 영화입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삶을 기억하는 일은 결코 과거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를 더 잘 살아가기 위한, 그리고 미래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이제 저는 한 엄마로서, 한 여자로서, 그리고 한 시민으로서 이 진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들의 삶이 비록 짧았고 고통으로 점철되었을지라도, 우리가 기억하는 순간 그들은 다시 살아납니다. 그 용기를 기억하고, 진실을 전하며 살아가는 것이 남겨진 이들이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미도는 저에게 그 다짐을 안겨준 소중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