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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잊고 있던 나의 얼굴, 화해하는 방법, 나의 변산으로 돌아갈 시간

by dall0 2025. 4. 30.

[변산] 잊고 있던 나의 얼굴, 화해하는 방법, 나의 변산으로 돌아갈 시간
[변산] 잊고 있던 나의 얼굴, 화해하는 방법, 나의 변산으로 돌아갈 시간

 

 

잊고 있던 나의 얼굴을 마주하다

 

40대에 접어들면서 거울을 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단순히 외모가 신경 쓰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눈빛, 표정, 그 안에 담긴 감정과 마주하고 싶어 진다고 할까요. 이제는 "나는 누구였고, 지금은 누구인가"를 자주 되묻게 되는 시기입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이 시점에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어떤 끈 같은 것을 확인하고 싶어진 겁니다. 영화 '변산'은 그런 제게 거울 같은 영화였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애써 외면해 왔던 나의 본모습을 다시 마주하게 만들었습니다. 래퍼가 되기 위해 서울에서 고군분투하던 청년 학수가 아버지의 위독 소식을 듣고 고향 변산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변산은 그에게 상처이자 흑역사이며, 절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 과거 속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됩니다. 어릴 적의 꿈, 친구들과의 추억, 외면했던 감정들까지. 그 모든 것이 다시 피어오르며, 그는 점점 감정을 되찾고, 과거의 자신을 인정하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바쁘게 살아오다 보니, 어느 순간 '나'라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열정적이었고, 감정의 결이 섬세했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의 엄마, 남편의 아내, 직장 내 역할로만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감정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났고, 나중에는 기쁨이나 슬픔조차 무디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영화를 통해 잊고 있던 나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하던 소녀였던 제 모습이 영화 속 장면들 사이에서 스르르 피어올랐습니다. 학수가 다시 만나는 변산의 바다 냄새, 동네 친구들의 익숙한 말투, 오래된 분식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 그런 요소들이 하나하나 모여 그를 감정적으로 흔들고 변화시키듯, 저 역시 제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감정들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도망치고 싶은 과거가 있습니다. 저 또한 외면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꺼내보지 않은 채 지금만을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영화 '변산'은 말합니다. 그 과거를 애써 덮고 피할수록, 오히려 더 무겁고 지긋하게 우리를 따라온다고요. 진짜 성장은 바로 그 과거와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고요. 영화 속 학수처럼, 나 역시 과거의 상처를 껴안고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변산'은 단순한 청춘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아주 개인적인, 내면으로의 여행이자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한 편의 영화가, 잊고 지낸 나의 얼굴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거울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는 믿게 되었습니다.

 

상처 입은 기억과 화해하는 방법

 

영화 '변산'의 진짜 이야기는 주인공 학수와 아버지 사이의 깊은 갈등 속에서 피어납니다. 학수는 서울에서 래퍼를 꿈꾸며 살아가지만, 어느 날 고향인 변산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생깁니다. 그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고향에 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술주정뱅이에 폭력적인 사람, 늘 차갑고 무심했던 존재로만 남아 있습니다. 학수에게 아버지는 그저 '상처 그 자체'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외면과 폭력은 그를 지금까지도 붙잡고 있는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고향에 머무는 동안 그는 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듣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 가족, 그리고 아버지의 주변 사람들의 말속에서 그는 자신이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삶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행동들 속에 사실은 나름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했던 흔적들이 숨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미숙하게 표현했던 그 세대의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학수의 아버지 또한 표현하지 못했을 뿐 마음은 늘 자식 곁에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제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오랜 시간 엄마와의 관계에서 감정적인 거리감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어릴 적 저에게 엄마는 늘 잔소리가 많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늘 자신의 기준대로만 저를 판단하는 것 같아 서운함이 컸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오랫동안 엄마를 마음속에서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제가 부모가 되고, 엄마가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도 그냥 서툴렀던 게 아닐까?' 엄마는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 시대의 전형적인 여성 중 한 명으로, 희생은 당연하고, 감정은 삼켜야 하는 삶을 살아왔던 거죠. 엄마의 잔소리는 사랑의 표현이었고, 엄격했던 모습 뒤에는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키우려는 마음이 있었음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수가 아버지를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장면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 인간관계에서 화해와 치유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만 기억하려 합니다. '왜 나에게 그렇게밖에 대해주지 않았나'라는 원망만 가득하죠. 하지만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게 되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런 방식밖에 몰랐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시야가 넓어지고, 굳게 닫혔던 마음도 천천히 풀어집니다. 우리 인생에는 크고 작은 오해가 쌓이면서 관계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특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 형제자매 사이, 그리고 친구 사이에서도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마음의 문이 닫히곤 합니다. 상처받기 싫어서, 혹은 용서할 수 없어서, 그렇게 서로를 피하게 되죠. 하지만 영화 '변산'은 그 문을 다시 열기 위해서 먼저 상처를 들여다보고, 감정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용히 말합니다. 이 영화는 그런 과정을 억지 감동이나 과장된 연출 없이, 현실적인 감정선과 캐릭터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진정성이 느껴졌고, 영화 속 이야기를 제 삶에 그대로 대입해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 '변산'은 말합니다. 모든 이별의 이유는 미움이 아니라 오해였다고. 그리고 이해는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고요. 상처는 덮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아물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깊게 가르쳐줍니다.

 

이제는 나의 변산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영화를 본 뒤 며칠 동안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을 맴도는 장면들과 대사,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감정들이 계속해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도 변산이 필요하겠구나.' 여기서 말하는 변산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어떤 장소, 시간이자 기억입니다. 상처받았지만 꺼내지 못한 기억, 외면하고 도망쳤던 과거,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감정들 그 모든 것과 다시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삶의 중턱에서 느끼는 막연한 외로움과 공허함을 덜어내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변산'이라는 영화가 제게 특별했던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솔직한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는 어떤 인물도 완벽하게 그리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무책임하고, 또 누군가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가까워지려다 상처를 주고 마는 모습들. 그렇게 엉켜 있는 인간관계를 영화는 억지로 풀려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며, 사랑의 또 다른 형태라고 말이죠. 서로 다른 시간대에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마음이 완전히 엇갈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요.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합니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중요한 건, 그 엉킨 관계 속에서 마음을 놓지 않는 것 아닐까요. 영화는 그런 점을 담담히 보여주며,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여지를 남깁니다. 그리고 저도 그 여운 속에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을까.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내가 외면했던 나 자신을 다시 끌어안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이제는 저도 제 인생의 변산을 찾아가려 합니다. 오래된 앨범을 꺼내어 잊고 있던 나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려 합니다. 그 속에는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와의 웃음도, 부모님과의 어색했던 순간들도 담겨 있겠지요. 어색해진 친구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늘 바빠서 미뤘던 엄마와의 차 한 잔을 조용히 나누려 합니다. 그렇게 관계들을 다시 꿰어가며, 놓치고 살았던 나를 하나씩 다시 찾아갈 것입니다. 바쁘고 빠른 일상 속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이제는 조금씩 마주해보려 합니다. 영화 '변산'은 청춘의 성장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중년의 회복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아직도 마음속에 어린 시절의 아픔이 있고, 여전히 풀지 못한 감정들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외면하기보다 조용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이 감정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다시 나로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변산은 제게 그런 질문을 던지게 만든 시작점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앞으로의 삶을 더 진실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도, 저만의 속도로 제 인생의 변산을 향해 걸어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