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말, 잊혀진 마음
40대를 넘어선 지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었는가, 혹은 얼마나 무심하게 흘려보냈는가. 말은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이자, 마음을 나누는 창구이며, 때로는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치이며, 우리는 점점 말의 본질을 잊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영화 '말모이'는 그런 저의 생각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조선어학회와 일본어 탄압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다룬 시대극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제게 던진 질문은 단순히 과거사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같았습니다. 바로 "당신은 지금 어떤 말을 지키며 살고 있나요?"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판수'는 문맹입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글을 몰라서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지 못하고, 전단지 하나조차 읽지 못합니다. 그런 그가 우연히 조선어학회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처음엔 그저 생계 때문이었지만, 점점 그는 말을, 우리말을 지키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말모이'는 단순한 일제강점기의 시대극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말'이라는 것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서서 한 사람의 정체성과 얼마나 깊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판수의 변화는 단지 글을 익히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말과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며, 스스로를 사람으로서 당당히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은, 판수가 어린 아들에게 "글자 몰라도 사람처럼 살 수 있다"라고 말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말속에는 삶에 대한 체념이 녹아 있었고, 동시에 자식 앞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아버지로서의 무력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저는 우리 세대의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자신은 뒤로한 채 자식을 위해 헌신하셨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 오버랩되었습니다. 그분들도 판수처럼, 마음 깊은 곳에 말하지 못한 수많은 말들을 품고 살았겠지요. 말과 글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모른다는 차원을 넘어서, 세상과 단절되고, 자신의 존재마저 투명해지는 경험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곧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떨까요? 스마트폰으로 하루에도 수백 개의 문장을 주고받고, SNS에 끊임없이 글을 남기지만, 정말 진짜 말을 하고 있을까요? 진심을 담은 말,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말, 삶을 지탱해 주는 언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말모이'는 그런 저에게 말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했습니다. 어떤 말은 한 사람을 살게도, 무너지게도 합니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삶의 기록이며, 세대와 세대를 잇는 유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지키고 있는 말은 무엇인가요? 혹시 너무 쉽게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닌가요? 이 영화는 잊고 있던 우리의 말, 그리고 잊고 있던 우리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말은 사라질 수 있지만, 마음은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다시 언어가 되어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순간, 우리는 그 말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말모이는 단순히 과거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지키고 싶은 것들의 이름
영화 말모이를 보며 제가 가장 깊이 공감했던 것은 말이 단지 단어의 모음이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들의 '이름'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주인공들은 생계를 잃고, 자유를 잃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조선어 사전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집니다. 왜 그랬을까요? 단순히 언어를 지키기 위해서였을까요? 저는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말 그 자체가 아니라, 말속에 깃든 존재와 삶, 정체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말은 조선 사람으로서의 뿌리였고, 삶을 증명하는 유일한 도구였으며, 나와 내 가족, 나의 민족이 존재하고 있다는 흔적이었습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도 말은 늘 함께합니다. 아기가 처음으로 내뱉는 '엄마'라는 말에 부모는 눈물을 흘리고, 연인에게 전하는 한마디 고백은 관계를 시작하게 만들며, 친구의 위로의 말 한 줄이 긴 밤을 버틸 힘이 되기도 합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우리는 말 한마디로 삶이 흔들리기도 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기도 하지요. 말은 그렇게 우리 삶의 중심에서 울고 웃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중한 말을 놓치고 살아왔을까요? 바쁘다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혹은 너무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돌이켜보면, 그 말들이야말로 우리가 지키고 보듬어야 할 것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40대에 접어들며 삶의 속도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잡아주는 것도 결국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 어떤가에 따라 자존감이 달라지고, 아이에게 건네는 말이 그 아이의 내면을 키우며, 배우자에게 전하는 말이 관계의 온도를 결정짓습니다. 말은 때로는 삶의 나침반이 되기도 하고,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들으며 살아가는지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셈입니다. 말모이 속 조선어학회 사람들의 모습은, 언어를 지킨다는 것이 단순한 기록의 행위가 아닌,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헌신은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사람들의 감정과 삶을 지켜내려는 뜨거운 의지였고, 그것은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이 영화를 본 후, 저는 제 삶 속의 말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쓰는 사소한 표현 하나에도 귀 기울이고, 부모님이 해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마음에 새기고 싶어 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따뜻한 말을 아끼지 않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말은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서,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가치이고, 기억이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어떤 말도 쉽게 흘려보내지 않으려 합니다.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그 이름부터 소중히 여겨야 하니까요.
우리가 지켜야 할 오늘의 말모이
영화 '말모이'를 다 본 뒤 마음 한편이 뭉클했고, 무언가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내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이어리장을 펼쳤습니다. 그 다이어리는 제가 육아를 하며 틈틈이 써온 것으로, 아들의 첫 말, 남편과 나눈 따뜻한 대화,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기신 마지막 편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속의 글자 하나하나를 다시 읽는 순간, 저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말은 곧 사람이다.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고 존재 그 자체라는 사실이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말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문자 메시지와 댓글, 이메일과 통화가 오갑니다. 하지만 그 안에 진짜 마음이 담긴 말은 얼마나 될까요?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지켜주는 말보다 비난하고, 상처 주는 말이 더 자주 들리는 세상입니다. 때로는 말이 너무 가벼워졌고, 그 무게를 잊은 채 쉽게 내뱉곤 합니다. 그런 시대에 '말모이'는 조용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전합니다. 사라져 가는 말, 잊히는 언어를 지키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지켜야 할 말은 무엇인가?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살리는 말인지, 아니면 무심코 던져 아프게 하는 말인지를 말입니다. 저는 영화 이후, 제 일상에서 말의 힘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아들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더 자주 합니다. 장난감을 정리하거나, 밥을 다 먹었을 때, 그저 평범한 순간에도 마음을 담아 감사의 말을 건넵니다. 남편에게는 "수고했어", "오늘도 고마워", "네가 있어서 참 든든해" 같은 말을 하루에 한 번은 꼭 하려고 노력합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그런 말이 오갈 때마다 우리 가족 사이에 따뜻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말은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모이'라는 영화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언어를 지킨다는 것은 단어 하나하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사람의 온기, 감정, 삶의 조각들을 지키는 일입니다. 말은 곧 마음이고, 마음은 곧 사람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결국 사람의 진심입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잊히지 않도록 말로 기록하는 것, 그리고 소중한 말을 마음에 새기는 일, 그것이 우리가 오늘 할 수 있는 '말모이'의 실천 아닐까요? 이제는 저도 제 일상 속에서 나만의 '말모이'를 모으기 시작하려 합니다. 가족과 나눈 다정한 대화, 친구와 주고받은 위로의 말, 스스로에게 해주는 격려의 말들까지. 그 작은 말들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의 말들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따뜻한 빛으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