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그림자, 그 끝에서 마주한 나의 얼굴
영화 '마더'는 단순한 살인사건을 다룬 스릴러가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어머니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수많은 감정의 결이 존재합니다. 40대 초반, 기혼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들은 매일 조금씩 바뀌고 깊어집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수록, 나는 과연 어떤 존재로 남는 걸까 자문하게 됩니다. 그럴 때 이 영화를 다시 보면, 도준의 엄마가 보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영화 속 엄마는 오직 아들 도준만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아들이 다치지 않도록, 실수하지 않도록,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지 않도록 언제나 앞에 서 있습니다. 그녀의 삶에서 도준은 존재의 이유이고 중심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 앞에 도준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세상은 그녀의 아들을 혐오하고, 경찰은 무능하며, 이웃은 무심합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엄마는 스스로 나섭니다. 도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거리에서, 골목에서, 법의 맹점 속에서 끝없이 싸웁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며 한편으로 감동했고, 한편으로는 숨이 막혔습니다. 엄마는 너무나 고립되어 있고, 그녀의 외침은 너무 조용합니다. 우리 현실 속에서도 많은 엄마들이 그렇습니다. 말없이 버티고, 묵묵히 감당하며, 가족을 위해 자신을 잊고 살아갑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아이의 학원 시간에 맞춰 일정을 조정하고, 가족 식탁의 메뉴를 고민하고, 나 자신은 뒤로 미룬 채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제 삶의 모습이 영화 '마더' 속 엄마에게서 투영되어 보여 더욱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엄마는 결국 진실을 마주합니다. 자식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여정이 사실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죄책감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장면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면서도 서글펐습니다. 엄마는 아들을 위해 달렸지만, 결국 마주한 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엄마의 고통을 극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조용히, 그러나 깊게 파고들며 관객에게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디까지 갈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단지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 선택과 타협, 그리고 사랑의 방식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아이를 키우며 ‘이게 최선일까, 혹은 나를 위한 선택이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졌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는 그 모든 감정들을 다시 정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종종 '엄마니까 당연하지'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여성에게 부당하게 기대되는 희생과 자기부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영화 '마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엄마는 늘 도준을 향해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라고 반복합니다.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도준 같은 아이에게 얼마나 잔인한지, 또 그런 아이를 키우는 자신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 말입니다. 엄마는 약초를 캐고, 침을 놓으며 생계를 꾸려갑니다. 그녀는 강인해 보이지만 실은 언제 터질지 모를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저는 그런 엄마의 일상적인 고단함이 너무나 낯설지 않았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족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저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모성은 본능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성은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매 순간 아이를 향한 사랑과 걱정, 인내를 선택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도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엄마는 단 한순간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이름은 ‘엄마’뿐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엄마가 도준의 친구 진태를 찾아가 취조하듯 말할 때입니다. 그녀는 도준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의심하고, 도전하고, 파헤칩니다. 그 모습은 때론 무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한 여자의 절박함과 존재 이유를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녹아 있습니다. 영화 후반, 엄마는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됩니다. 도준은 사실 죄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 진실 앞에서 잠시 무너집니다. 하지만 곧 일어섭니다. 그녀는 결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선택이자, 동시에 자기 파괴였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엄마도 인간입니다. 완벽할 수 없습니다. 사랑도 때론 이기적일 수 있고, 그 선택은 옳고 그름으로 쉽게 나눌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어른이자, 진짜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 관광버스 안에서 엄마는 홀로 춤을 춥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노랫소리, 흥겨운 음악 속에서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자극하며 고통을 지웁니다.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자학이자 망각의 의식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수차례 돌려보았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기괴하게 느껴졌지만, 볼수록 그 춤은 절절했습니다. 모든 것을 덮은 후에야 겨우 찾아온 평온. 그러나 그 평온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녀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이 영화는 단호히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폭력, 죄책감, 희생, 집착, 그리고 용서를 차곡차곡 쌓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관객 스스로 그 무게를 가늠하게 만듭니다. 엄마는 결국 진실을 덮고 도준을 지킵니다. 그 선택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갔고, 또 다른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과연 내가 그녀의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오랫동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위대합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은 때론 타인에게 상처가 되고, 스스로에게도 깊은 상흔을 남깁니다. 이 영화는 그 무서운 진실을 끊임없이 암시하며, 관객이 마주 보도록 이끕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진짜 모성은 아이를 위한 헌신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켜내는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느꼈습니다. 내 감정을 인정하고, 내가 무너지는 순간을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 아닐까요. '마더'는 그렇게 제 삶의 어떤 결을 바꿔놓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를 키우며 고민하는 수많은 엄마들에게, 이 영화는 묵직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