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속에서 피어난 도전, 그리고 공감
'도리화가'라는 영화를 접한 건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특별한 기대 없이 주말 오후, 마음의 여유를 느끼고 싶어 무심코 고른 영화였지만, 상영 시간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저릿한 감정이 밀려왔고, 영화의 장면 장면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이 영화는 2015년에 개봉한 작품으로, 조선 후기 실존 인물인 진채선과 그녀의 스승 신재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중심에 있는 진채선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판소리를 배울 수 없던 시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고자 한 인물입니다. 그녀가 걸었던 길은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굳건히 자리 잡고 있던 관습과 금기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진채선의 도전은 단지 옛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우리 사회, 그리고 제 삶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0대의 여성으로 살아오며 저는 종종 사회적 역할과 가정 내 책임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습니다. '엄마니까', '아내니까', 그리고 '여자니까'라는 말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짓는 기준이 되곤 했습니다. 그 틀 안에서 저는 늘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정작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데는 서툴렀습니다. 사회적 시선, 가족의 기대, 스스로의 불안 등 여러 이유가 겹겹이 쌓여 제 목소리를 삼켜버리곤 했죠. 그런 저에게 진채선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마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같은 여성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택했습니다. 재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려져야 했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했고, 판소리라는 세계에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새겼습니다. 그녀가 겪었을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그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열정은 고스란히 영화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저 역시 돌아보면 수많은 갈림길에서 망설이며, 때론 포기하고, 때론 숨죽여 살아왔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사회가 요구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도리화가'를 본 후, 저는 비로소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목소리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나 역시 진채선처럼, 자신만의 소리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었던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녀처럼 역사에 남는 인물은 아니지만, 제 삶의 무대 위에서만큼은 나만의 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단지 한 여성의 도전기를 그린 것이 아닙니다.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자, 우리가 여전히 마주하고 있는 유리천장에 대한 은유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노래입니다. 이제는 저도 조금씩 내 안의 '도리화가'를 부르고 싶습니다. 사회가 정한 틀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싶습니다. 진채선의 도전처럼, 누군가에게는 작은 목소리일지라도 저마다의 소리가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말입니다.
소리로 부른 자유, 그 울림이 주는 삶의 진실
영화 '도리화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진채선이 무대 위에서 판소리를 처음 선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 결연한 눈빛, 숨죽인 관객들의 반응까지 모두가 어우러져 그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데뷔 무대가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존재가 세상 앞에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선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짧은 장면은 단순한 음악 공연이 아닌, 한 인격의 해방이며 자유의 선언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첫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엄마라서 주저하는 여성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취향이나 감정을 숨기는 사람들, 혹은 단지 '말할 자격이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입을 닫아야 했던 수많은 존재들.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마음속에 품은 ‘소리’를 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채선은 판소리를 통해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키는 길이 되었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것,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그녀는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판소리를 금기시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녀의 등장은 하나의 혁명이었습니다. 단지 예술적 성취를 넘어서, 인간의 존엄과 자아의 회복이라는 깊은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저는 우리 각자도 마음속의 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꺼내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 소리는 비단 음악이나 말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이는 글로, 어떤 이는 그림이나 몸짓으로, 또 어떤 이는 조용한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소리를 내는 행위 자체가 우리를 진짜 우리답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첫 울림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진동이 되어 퍼져나갑니다. 진채선이 처음 소리를 배울 때, 주변의 반대는 매우 거셌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녀의 진심과 노력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곧 주변을 바꾸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진리를 그녀는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 삶의 방향이 나와 내 가족,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특히 저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과연 어떤 메시지를 받고 있을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려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큰 용기와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도리화가(桃李花歌),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피는 모습을 노래한 곡이지만, 채선의 노래는 단순한 자연의 풍경을 넘어, 그녀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가능성이 꽃피는 순간을 노래한 것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진심을 담아내는 목소리도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나의 소리가 작고 미약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울림이 되고, 또 다른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울림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시대는 달라도 통하는 용기
영화 '도리화가'를 다 보고 난 후, 마음속에 가장 오래 남았던 건 '무엇을 꿈꾸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영화 도리화가는 단순히 조선 최초의 여류 소리꾼 진채선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여성의 선택과 용기를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진채선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 신분이라는 제약으로 수많은 벽에 가로막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에 순응하거나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시대적 한계에 굴하지 않고 끝내 자신의 길을 찾고, 자신의 소리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무모하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꿈을 꾸는 것'보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어렵고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어느새 익숙함 속에 안주하게 됩니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안정된 현재를 택하고, 도전보다 안전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저 또한 40대가 되면서 그런 선택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분명 꿈꾸던 것들이 있었고, 가슴 뛰는 일들을 향해 나아갔던 적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상에 치이며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조차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리화가'는 저에게 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선뜻 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어쩌면 오래전부터 내 안의 소리를 외면해 온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외부의 소음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데에는 서툴고 낯설기만 합니다. 이 영화는 말해주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노래를 불러보라고. 삶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으며, 각자가 자신의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소리를 낼 수 있다고요. 진채선이 그랬듯이,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이도, 조건도, 환경도 아닌, '나'라는 존재가 무엇을 원하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그저 시대극 혹은 전기 영화로만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여성의 삶, 예술의 힘,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자유란 단순히 제약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온전히 감당해 내는 책임과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요. '도리화가'는 그렇게 제 삶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단지 스크린 위의 이야기가 아닌,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제 안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작고 불완전할지라도, 나만의 소리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실된 삶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도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어디에 서 있든, 얼마나 멀리 돌아왔든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자신의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다고. 늦었다고 느껴질 때일수록, 오히려 그것이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고요. 진채선이 부른 '도리화가'처럼, 우리도 삶의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노래를 맘껏 부르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노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