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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끝나지 않는 전쟁, 살아남기 위한 선택, 평화를 위한 용기

by dall0 2025. 6. 13.

[고지전] 끝나지 않는 전쟁, 살아남기 위한 선택, 평화를 위한 용기
[고지전] 끝나지 않는 전쟁, 살아남기 위한 선택, 평화를 위한 용기

 

 

끝나지 않는 전쟁, 그 안에 선 인간을 바라보다

 

2011년에 개봉한 영화 '고지전'은 1953년 정전 협정 직전의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전쟁을 다룬 수많은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조금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려한 전투 장면이나 전략적 승패에 집중하지 않고, 전쟁 속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무뎌지거나 흔들리는 인간성.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마치 고지 위에 함께 서 있는 듯한 숨 막히는 몰입감을 느꼈고, 스크린 속 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적과 아군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는 전장의 현실이었습니다. 전쟁이란 선과 악, 아군과 적군이라는 이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양상을 지니고 있음을 영화는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같은 민족이 총을 겨누어야 했던 한국전쟁의 아이러니가, 그 고지에서 오가는 피와 진흙, 그리고 무표정해진 병사들의 눈빛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누가 적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병사들은 더 이상 국가를 위해서라기보다, 곁에 있는 동료를 지키기 위해, 혹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존재로 바뀌어 갑니다. 그들의 선택과 갈등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과 양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듭니다. 영화 '고지전'을 보며 저 자신을 투영하게 되는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 혹은 제 아이와 같은 젊은이들이 저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흔히 전쟁을 남성의 이야기로 여깁니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의 상처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깊이 스며듭니다. 총을 든 병사들뿐 아니라, 전장 밖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가족들, 집을 잃고 방황하는 피란민, 전후의 폐허 속에서 다시 삶을 시작해야 하는 모든 이들이 전쟁의 희생자입니다. 영화는 그런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고통에도 조명을 비추며, 전쟁의 비극이 단지 전투 현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 줍니다. 정전 협정 직전이라는 시간적 배경도 매우 상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희망이기보다는, 오히려 불확실성과 긴장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하루아침에 끝날 수도 있고, 또다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병사들은 극도의 피로와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냅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저는 이상하게도 제 삶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물론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키우며 매일매일 예측할 수 없는 일상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버텨내는 삶 역시 어떤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아냅니다. 그 점에서 그들과 저는 묘한 연결감을 느꼈습니다. '고지전'은 단순히 과거의 전쟁을 재현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운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철학적 영화입니다. 총성이 오가는 와중에도 끝끝내 누군가를 살리려 했던 병사, 자신의 신념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던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가진 복잡성과 존엄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질문 앞에서 저는 한참을 멈춰 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승리도, 무력도 아닌,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끝내 양심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 그러나 잃어버린 것들

 

영화 '고지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병사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고지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끝없이 반복되는 전투를 이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정의나 확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명령'이라는 이름 아래 움직이고, 그 명령의 이유는 설명되지 않거나 의미를 상실한 채로 존재합니다. 이런 장면을 보며 저는 문득,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명확한 이유 없이, 혹은 사회적 구조나 타인의 기대에 떠밀려 해내고 있는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하루하루가 치열한 전쟁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 남편과의 관계 조율, 부모님과의 복잡한 감정의 교류 속에서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묵묵히 감정을 억누르며 해내야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내 감정이나 생각보다 '엄마니까', '며느리니까', '아내니까'라는 역할이 앞서며 나 자신을 뒤로 밀어내야 할 때가 많았지요. 영화 속 병사들이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듯, 우리도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명령 사회적 규범, 가족의 기대, 경제적 책임 아래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무감각해져 간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에서 병사들은 처음엔 적을 향해 총을 겨누는 일에 갈등과 고통을 느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감정을 잃어버리고 아무런 표정 없이 방아쇠를 당깁니다. 그것이 생존을 위한 적응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인간다움이 사라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 장면들은 마치 거울처럼 저의 일상을 비춰주는 듯했습니다. 반복되는 육아와 집안일,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웃는 법을 잊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 되며, '나'라는 존재가 점점 옅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고지전'이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인물들의 작은 몸짓은, 오히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큰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상처 입고 돌아온 전우를 위해 따뜻한 식사를 준비하거나, 비극을 막기 위해 잠시 멈춰 고민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전쟁 중에도 인간은 인간일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 따뜻한 마음과 소소한 선택들이 모여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전쟁을 겪지 않은 저의 삶에도 분명히 적용되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사람다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건네는 다정한 한마디, 남편에게 보여주는 사소한 배려, 피곤한 하루 끝에 가족에게 건네는 웃음 섞인 인사 하나가 결국은 우리 삶을 지탱하고, 나를 지켜주는 진짜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작은 행동들이 인간으로서의 나를 회복시키고, 관계를 다시 연결해 준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일상의 구조 속에서 쉽게 잊히는 감정들, 인간적인 따뜻함을 더 자주 떠올리려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전쟁 같은 삶 속에서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고지전'은 저에게 단지 전쟁 영화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결국,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인간으로 남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였습니다.

 

평화를 위한 용기, 그 첫걸음은 나로부터

 

'고지전'은 끝없는 전쟁의 참혹함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전쟁 자체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 영화는 단지 전투의 승패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한가운데 놓인 개인들의 삶과 감정을 조명합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영화가 말하는 '평화'란 결코 정치적인 협상이나 국제 조약 같은 거창한 틀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히려 평화는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영화 '고지전' 속 병사들은 국가나 이념이라는 이름 아래 고지 하나를 두고 치열하게 싸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정의가 아니라 생존이며, 그 생존은 결국 가족과 친구, 동료라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임이 드러납니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닿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일상이라는 이름의 전쟁터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경쟁, 가정에서의 책임, 사회 안에서의 다양한 갈등과 오해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애쓰며 살아갑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는 여러 형태의 갈등과 분열을 경험했습니다. 정치적인 입장 차이로 인한 극단적인 대립, 세대 간의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단절, 성별 간의 불신과 갈등까지. 이런 사회적 균열은 마치 보이지 않는 전선처럼 우리 삶 곳곳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야 합니다. '고지전'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제시해 줍니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인 선택과 따뜻한 연민, 그리고 용기 있는 행동이 어떻게 희망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며 말입니다. 저는 이제 40대에 접어든 사람으로서, 더 이상 세상을 이상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세상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사람은 때로 이기적이며 상황은 언제든 예상 밖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싶다는 열망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고지전'은 그런 저에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준 작품입니다. 평화는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일깨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며, 친구이며, 이웃입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먼저 손을 내미는 행동.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진정한 평화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은, 영화 속 병사들이 전장에서 보여주는 조용한 용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상대의 입장을 상상해 보려는 마음, 그리고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야말로 전쟁의 잔재를 없애고 평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지금 삶의 고지에서 힘겹게 버티고 계신 분이 있다면, '고지전'을 통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도 끝내 지켜내려는 희망과 사랑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평화를 위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평화는 결국 내가 시작해야 할 용기라는 것, 그 첫걸음을 내딛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실천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