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작은 해방감, 결국은 정면을 마주해야 하는 삶, 마음의 흔적들

[게이트] 작은 해방감, 결국은 정면을 마주해야 하는 삶, 마음의 흔적들

 

 

바람이 스며들 듯 다가온 작은 해방감

 

바쁜 일상이 이어질수록, 짧은 숨이라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간절해집니다. 아침 일찍 가족들을 챙기고, 늦은 오후 아이들 간식 준비에 분주해지는 하루의 틈 사이. 문득 TV를 켜다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영화 '게이트(2018)'는 생각보다 제 마음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익숙한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와 유쾌한 대사 속에, 말하지 않아도 공감되는 씁쓸한 현실이 녹아 있었습니다. 영화는 2008년을 배경으로, 실제 있었던 권력형 금융 스캔들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들어졌습니다. 정치권력과 검찰, 그리고 자본이 얽힌 거대한 사건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소시민들이 벌이는 일종의 사기극이 그려집니다. 정려원이 연기한 '소은'은 뇌를 다쳐 기억을 잃은 검사로,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준비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현실과 허구 사이를 오가며 진실을 좇는다는 설정은, 일상 속에서 나를 놓치고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저처럼 오랜 시간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오며 정작 내 이름을 부를 일이 줄어든 여성들에게는 이 영화의 출발점이 꽤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작은 웃음 하나에도 진한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현실에서는 쉽게 지을 수 없던 미소를, 영화 속 인물들의 허술하면서도 유쾌한 움직임 속에서 비로소 터뜨릴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우리의 삶 어딘가와 조용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빙글빙글 돌아도 결국은 정면을 마주해야 하는 삶

 

'게이트'는 단순한 범죄 코미디를 가장한 사회 풍자극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현실을 웃음으로 덮되, 그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조용히 되짚게 한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불편한 진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쉽게 넘길 수 없는 불공정과 권력의 이면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입니다. 임창정이 연기한 '기철'이라는 인물은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몰락한 사기꾼입니다. 그는 기억을 잃은 소은을 이용해 검찰청 내 금고에 숨겨진 검은 자금을 털 계획을 세우죠. 어찌 보면 그들의 행동은 불법이고 비도덕적이지만, 그 대상이 권력과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라는 점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깁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정의답게 작동하지 않을 때, 그것을 비틀어 바라보는 이 영화의 방식은 통쾌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저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 일상이 얼마나 위태로운 구조 위에 서 있는지를 자주 잊곤 합니다. 영화 '게이트'속에서 평범한 인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결코 정답은 아니지만, 그 절박함만큼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 역시 내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몇 번이고 양보하고, 물러서고, 때로는 나를 감추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자주 정의롭지 않고, 삶은 언제나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게이트' 안에는 존재합니다. 현실은 돌아가고 빙글빙글 헛돌기도 하지만, 결국은 정면을 마주해야만 진짜 삶이 시작된다는 걸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기억보다 깊은 곳에 남는 마음의 흔적들

 

영화 '게이트'가 끝난 뒤, 소은이라는 인물의 기억이 돌아왔는지 아닌지는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그녀가 무엇을 선택했는가였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찾는 여정을 택한 그녀의 결정은,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때로는 고통스러우며, 때로는 가장 큰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를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의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지 범죄와 사기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기억을 잃은 한 여성이 진짜 자아를 되찾아가는 과정이며, 동시에 잊고 있던 신념과 가치들을 회복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결혼 전에는 나름의 꿈이 있었고, 하고 싶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리며 살아가는 동안 그 꿈들은 어느새 잊혔고, 지금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게이트는 무언가를 다시 꺼내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예전의 나, 꿈꾸던 나, 아직도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존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 떠올리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표정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후회, 안도, 슬픔, 그리고 아주 미세한 희망까지. 그것은 아마도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진짜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것들을 안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게이트'는 단순히 한바탕 웃고 끝나는 영화가 아닙니다. 현실의 부조리와 싸우면서도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무엇보다 '나 자신'이라는 잊힌 주체를 다시 발견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하루하루를 가정에 바치며 살아가는 40대 여성들에게는 잔잔한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합니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마음에 새겨진 감정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영화 '게이트'는 그런 감정의 흔적을 따라가며, 우리가 진짜로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조용히 꺼내보시길 바랍니다. 웃음 끝에서 마주하게 될 울림은 생각보다 깊고 따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