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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계보] 청춘의 뒷모습, 조용한 이별의 순간들, 그럼에도 우리는

by dall0 2025. 8. 5.

[거룩한 계보] 청춘의 뒷모습, 조용한 이별의 순간들, 그럼에도 우리는
[거룩한 계보] 청춘의 뒷모습, 조용한 이별의 순간들, 그럼에도 우리는

 

 

낡은 골목에서 마주한 청춘의 뒷모습

 

2006년, 저는 결혼을 막 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영화 '거룩한 계보'가 개봉했을 때, 조폭 영화라는 이유로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40대 초반이 된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며 전혀 다른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청춘을 지나 중년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영화는 단지 폭력과 조직의 이야기가 아닌,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사라진 온기와 고단한 뒷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상두(정준호 분)는 조직에서 중간 간부쯤 되는 인물입니다. 과거의 명성을 등에 업고 있지만, 시대는 변했고, 젊고 야망 있는 성수(정우성 분)가 등장하면서 중심축은 조금씩 기울기 시작합니다. 세대의 교체, 권력의 전환. 이런 낡은 조직의 이야기 속에서 저는 제 삶과 겹치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젊은 날의 저는 꿈도 있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고, 세상의 부조리에도 목소리를 내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육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런 제 모습은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상두가 조직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는 모습은,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면서 나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는 지금의 제 모습과 묘하게 겹쳐졌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내 일정을 포기하고, 남편이 힘들어하면 내 감정을 감추고 다독입니다. 가족을 위해 '나'라는 이름을 뒤로 미루는 삶. 이 영화는 그런 조용한 희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낡은 골목, 어둡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인물들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그들도 분명 젊고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을 테지요. 영화는 그들의 청춘이 얼마나 치열하고, 때로는 다정했는지를 묵묵히 그려냅니다. 그리고 그 시절을 지나온 우리에게,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속삭입니다.

 

누구도 몰랐던 조용한 이별의 순간들

 

영화 '거룩한 계보'속 인물들은 격렬하게 충돌하고, 피를 흘리며 싸웁니다. 하지만 그 싸움은 겉으로 드러난 폭력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깊은 감정의 골이 숨어 있습니다. 특히 상두가 겪는 갈등은, 단순한 권력다툼이 아닌 세월과의 이별, 익숙했던 삶에서 한 발 물러나는 고통 그 자체입니다. 40대가 되니 이런 감정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젊은 시절 열정적으로 했던 일들, 아무도 대신해주지 못할 만큼 소중했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때 느껴지는 허전함. 그것은 마치 조용한 이별처럼 다가옵니다. 누가 손을 흔들어주지도 않고, 환송의 말 한마디 없이도 우리는 그 자리를 비워줘야 합니다. 상두는 조직의 흐름에서 점점 밀려납니다. 성수는 강하고 야망 있으며, 조직을 새롭게 만들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두는 그 속에서 여전히 인간적인 정을 놓지 못합니다. 그가 후배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에서, 저는 왠지 모르게 엄마들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은 무너지더라도 아이는 괜찮길 바라는 마음. 남편의 무거운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라는 마음.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마음을 가진 수많은 평범한 어른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수 역시 냉정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의 눈빛에는 혼란과 고뇌가 함께 존재합니다. 결국 그도 상두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자신감에 넘쳐 있지만, 언젠가는 새로운 세대 앞에서 똑같은 불안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슬픔은, 그렇게 우리 모두가 결국 조용히 자리를 비워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이별 속에서도, 우리는 묵묵히 걸어가야 합니다. 가족을 위해, 일상을 위해, 그리고 사랑을 위해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을 위해 밥을 짓습니다

 

'거룩한 계보'는 말합니다. 누가 승자였는지, 누가 더 많은 것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중요한 건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누가 삶을 붙잡고 있는가입니다. 영화의 후반부, 상두는 조직의 실세 자리에서 밀려나고, 성수는 새로운 리더가 됩니다. 갈등은 끝났고, 권력은 이동했으며, 많은 이들은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이 장면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아이가 열이 나도, 남편이 지쳐도, 저는 여전히 다음 날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합니다. 눈물이 나도 밥을 지어야 하고, 마음이 힘들어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줘야 합니다. 인생은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엄마들, 아내들, 그리고 어른들을 이 영화는 조용히 응원합니다. 상두가 떠나는 장면을 보며 저는 끝이 아니라 전환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인생은 계속 흐르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자리를 옮기고, 역할을 바꾸며 살아갑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저는 다시 부엌으로 향해 밥솥을 열었습니다. 익숙한 쌀 냄새, 찌개가 끓는 소리, 아이들이 웃는 목소리. 그 모든 일상이 오늘도 나를 살아가게 만듭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거룩함이란, 누군가의 인생을 위해 자신을 조용히 던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닐까요? '거룩한 계보'는 폭력과 조직을 다루지만, 그 안에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청춘을 지나 중년을 살아가는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는 인생의 변화와 이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잔잔한 응원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매일 작은 자리에서 큰 책임을 지며 살아갑니다. 눈에 띄진 않지만, 그 자리들을 하나하나 지켜가는 삶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거룩합니다. 그 사실을 이 영화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말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