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시간] 잊힌 감정과 마주하는 순간, 관계 속에서, 유년의 그림자

[가려진 시간] 잊힌 감정과 마주하는 순간, 관계 속에서, 유년의 그림자

 

 

잊힌 감정과 마주하는 순간

 

2016년 개봉한 영화 '가려진 시간'은 겉보기에는 판타지 장르로 분류되지만, 그 속에는 인간 내면의 깊은 감정과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낸 감성적인 서사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이 아니라, 몇 해가 지난 어느 주말 저녁, 우연히 IPTV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아이가 외출한 틈에 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중, 별다른 기대 없이 틀었던 영화 한 편이 제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감정을 깨워주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성민은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간 동굴에서 시간의 틈에 갇히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몇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살아내지만, 바깥세상에서는 단 며칠이 지난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공간에서 돌아온 성민은 여전히 소년의 모습이지만, 내면은 이미 오랜 세월을 통과한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설정은 얼핏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 판타지적인 장치가 현실을 가장 진실하게 비추는 은유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종종 외형적으로는 어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상처와 미처 자라지 못한 감정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40대가 된 지금, 저는 가정에서 어머니이자 아내로, 사회에서는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가며 늘 강인하고 성숙해야 한다는 기대 속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면 깊숙한 곳에서 '아직 자라지 못한 아이'가 고개를 들며 외로운 눈빛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이 바로 이 영화를 보며 마주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성민이 갇혔던 시간은 단지 흐르기만 한 세월이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보내야 했던 외로운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그는 그 속에서 어른이 되었고, 내면은 깊어졌지만,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 장면은 오랜 기간 경력 단절을 겪었던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겹쳤습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한동안 사회에서 멀어졌던 저는, 다시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이미 세상은 한참 앞서가 있었고, 이전의 저를 기억하거나 기다려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치 제 존재가 사회 속에서 '가려진 시간'에 갇혀 있었던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느꼈던 고립감과 상실감,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은 쉽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습니다. 성민이 돌아왔을 때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던 것처럼, 나 또한 나 자신의 변화와 내면의 시간을 세상에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가려진 시간'을 통해 저는 그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그것이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영화 '가려진 시간'은 단순히 특수한 소재를 다룬 판타지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 어딘가에 숨겨둔 시간, 잊고 지내려 했던 감정과 기억을 꺼내어 보여주는 섬세한 거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울을 통해 저는 나 자신을, 그리고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내면의 일부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알아보지 못해도, 나만큼은 나를 인정하고 다독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진실

 

영화 '가려진 시간'의 중심 메시지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나 멈춤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보다는, 그 시간을 견디며 내면에서 겪는 성장과 변화에 있습니다. 주인공 성민은 시간이 멈춘 틈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그 속에서 오랜 시간을 홀로 견디며 어른이 되어버립니다. 겉모습은 여전히 아이이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수많은 상처와 외로움을 품은 어른이 된 것이지요. 이는 단지 영화 속 설정에 국한되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깊이 닮아 있습니다. 특히 저에게 영화 '가려진 시간'은 한 사람의 엄마로서의 삶과 놀랍도록 겹쳐졌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저는 제 삶의 속도를 멈춰야 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로서, 한 개인의 시간은 타인의 시간 속으로 녹아들었고, 그 안에서 제 감정과 욕망은 자연스럽게 뒤로 미뤄졌습니다. 직장을 쉬고 가족을 돌보는 동안, 저 자신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고, 사회와의 연결은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려 했을 때, 저를 마주한 세상은 제가 지나온 시간들을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대했습니다. 저는 오랜 공백을 가진 '신입'처럼 낯선 취급을 받았고, 제 안의 경험과 성장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때 느꼈던 소외감과 허탈함은, 시간이 멈췄던 세계에서 돌아온 성민이 세상과 다시 마주할 때 겪은 혼란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영화 '가려진 시간' 속에서 성민은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겪은 고통과 진실은 쉽게 외면당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진심을 나눌 수 있는 단 한 사람, 수린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수린은 성민의 고백을 외면하지 않고, 그의 진심을 받아들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 인간관계에서의 진실과 치유의 힘을 강하게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누군가 앞에서 강해 보이려 애씁니다. 특히 여성은 가정과 사회 양쪽에서 늘 '잘 견뎌내는 존재'로 기대받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묵묵히 버티는 것을 미덕처럼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일까? 성민은 상처를 숨기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꺼내 보여주는 용기를 냅니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아이의 모습에 갇힌 어른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마주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지 영화 속 인물의 성장에 그치지 않고, 우리 각자의 삶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저 역시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다시 사회 속 개인으로 살아가며 깨닫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음을 말할 수 있는 용기, 나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진짜 성숙함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용기를 받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 그 관계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치유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을요. 결국 영화 '가려진 시간'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시간이 흘렀느냐 멈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견뎠고, 어떤 관계를 통해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가가 더 본질적인 진실이라고. 그리고 그 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 흐르는 유년의 그림자

 

영화 '가려진 시간'은 단순히 판타지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인간성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는 성장영화도, 단순한 감성물이 아닙니다. 눈물 한 방울을 짜내기 위한 장치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삶의 조용한 이면에 숨어 있는 시간과 감정에 대해 묻습니다.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지, 또 그 속에서 어떤 감정들을 스스로 외면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저는 영화 '가려진 시간'을 통해 어느 순간부터 제 감정의 흐름을 스스로 막아버렸는지, 언제부터 내 안의 욕구보다 타인의 기대에 응답하는 삶을 선택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감정은 흘러야 건강한 것인데, 우리는 어른이 될수록 참는 것을 미덕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참는 시간이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고스란히 쌓인 채 우리 안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그 시간은 어느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를 흔들고, 때로는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극 중 주인공 성민은 현실의 시간과는 다른 세계로 떠나게 되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와 존재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흔듭니다. 저는 이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자신의 아픔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오히려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며,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살아갑니다. 사회는 늘 성과와 효율, 결과에 초점을 맞추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그 안에 숨겨진 연약함, 상처, 그리고 그것을 마주하는 용기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저는 청춘의 열정보다는 지속적인 성찰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젊은 날엔 미래를 향해 달리기에 바빴지만, 이제는 멈춰서 뒤를 돌아보는 시간도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가려진 시간은 단지 감동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고, 그동안 외면해 왔던 내면의 시간들과 대화를 나누게 합니다. 이 영화는 마치 잊고 있던 내 안의 유년의 그림자를 조용히 불러내어, 그 시절의 감정들과 화해하게 해 줍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가려진 시간'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 시간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의 삶의 깊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흔적입니다. 누군가에겐 유년의 상처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멈춰버린 열정, 잊힌 꿈, 혹은 말하지 못한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부정하거나 지우려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진정한 삶은 그런 내면의 시간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가려진 시간'은 바로 그런 메시지를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해주는 영화입니다. 눈부신 장면 없이도, 과장된 감정 없이도, 인간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기억과 감정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의 시간을 꺼내어 정직하게 마주해 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과 대화하고, 멈춰 있던 감정과 손을 잡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요?